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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 에베소서 1장의 교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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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21.09.03 21:29 3,752회

본문

[이규현 목사] 수영로교회




“목회자는 자신이 경험한 영역까지만 성도들을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영적상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결국 교회 예배의 해답은 담임 목회자입니다.
그 누가 무엇을 해도 그 이상 넘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목회자가 경험한 곳까지 갈 수 있습니다.”



테크닉이나 프로그램이나 방법론들이 어디 교회가서 뭘 배워와서 써먹어볼까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것은 실질적 교회변화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방법으로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목회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을 붙잡고 치열하게 자기가 고민하고 그 분야에 뚫어내는 경험들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교회가 무엇이며,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원대한 비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에베소서를 중심으로 교회론을 살피고자 한다.

 에베소서는 바울 신앙의 절정이자 교회론을 세우는데 매우 중요한 책이다. 그래서 목회적 관점에서 에베소서에 드러나는 교회론을 살피는 것은 중요하다. 특별히 에베소서 1장에서는 삼위일체를 중심으로 교회를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첫 번째로 드러나는 것은 거룩하게 선택된 교회이다. 에베소서 4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한다.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교회의 출발은 2천 년 전이 아닌 이미 창세 전, 하나님의 창조 사건 속에 있다. 교회는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계획하셨다. 또한 그 교회를 통해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아들들이 되게 하신다.

“그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교회는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 속에서 이루어진 구원공동체라는 것을 말해준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 가운데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이 교회의 출발이다.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바로 거룩하고 흠이 없는 구별된 곳이 교회이다.




#피로 구속
 두 번째, 피로 구속받은 교회이다. 1장 7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교회, 교회를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대가 지불이다. 교회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서 세워진 곳이다. 그 대가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세우신 것이다. 여기서 교회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목회자는 언제나 이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이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어떠한 경륜과 비밀 속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도록”. 종교적인 노력과 인간의 힘이 아닌 은혜의 풍성함과 하나님의 은혜의 작용에 의해서 일으켜지는 구원이다. 결국 우리를 구원해 내는 은혜로 주어진 구원이라는 것이다. 결국 교회의 중심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피가 그 중심이다.
 건강한 교회의 특징으로 복음이 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복음을 선명하게 선포하고, 복음을 드러내고, 은혜의 풍성함을 전하는 것. 이것에 모든 사역의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한다. 설교, 심방, 교육, 훈련, 상담, 구제에도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피로 말미암아 교회를 세우셨다.





#성령의 역사
 세 번째, 성령으로 인친 교회다.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인친다는 표현은 성령의 보증을 말한다. 구원의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역사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는 구원의 역사다. 자칫 성령의 역사는 은사주의로 흘러갈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 사건과의 연결다. 믿음을 주고 회개가 일어나고 변화되는 이 모든 것은 성령이 하신다. 신약 공동체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 성령의 역동성이 살아있는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적으로 성령의 의존하는 태도가 중요했다. 성령의 인치심은 구원의 사건을 일으키고, 그것은 교회의 역동성으로 이어진다. 그러면 교회 내에 성령의 일하심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 교회 안에 구원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것이 기준이 된다.
 한 교인이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 사람의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된다. 회개나 믿음을 가지는 것은 전적인 성령의 역사이다. 성도의 변화는 설교를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성도를 위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설교를 사용하셔서 변화시키신다. 전적으로 성령이 하신다.



#삼위일체의 일하심, 연합, 연계
 결국 에베소서를 시작하며 사도 바울이 언급하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회이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교회를 위해 어떻게 일하셨는가. 성부 하나님의 창세 전의 택정하심.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 구속 사건과 성령의 인치시는 사건. 성부 성자 성령의 이 사역이 복음이며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을 사도 바울은 가장 먼저 말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활동 사역만 충분히 인식하고 그를 통해 사역이 왕성하게 일어나기만 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


 우리 주변의 언어들은 이미 개념화되어있고 이론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 개념과 이론으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엄청난 단어들인데 그냥 피상적으로 쓰일 때가 있다. 엄청나게 파괴력 있는 폭탄같은 단어인데 그 안의 실체를 모르는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짧은 시간에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사전에서 정의하고 개념하는 것으로는 다 표현될 수 없다. 하나님의 거대한 경륜 속에서 창세 전부터 이루어져 가고 있는 이 안에 우리가 지금 들어와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엄청난 대가의 지불, 그 피 흘리심의 값을 지불한 교회. 그리고 성령의 끊임없는 인치심이 우리 가운데 운행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 안에서 경험되어야 한다.



 네 번째, 예배하는 교회이다. 에베소서 1장 6, 12, 14절 동일하게 사도 바울은 무엇을 고백하는가? 찬송하리로다, 찬송하리로다, 찬송하리로다. 동일하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관련된 찬송을 하고 있다. 구원의 역사 뒤에는 반드시 예배가 연결된다. 바울은 주체할 수 있는 감격을 가지고 서신을 쓰고 있다. 이후에도 그 감격이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예배다. 에베소서 5장에도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전부 예배에 관련된 부분을 이야기한다. 결국 구원받은 공동체의 표현은 마지막에 예배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예배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 속성, 행하심에 대하여 아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수록 예배는 더 깊어진다. 하나님을 모르면 예배자가 될 수 없다. 결국은 구원의 감격과 기쁨으로 드려지는 살아있는 예배는 복음을 경험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예배는 살아있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영과 영의 만남이다. 이는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제자훈련과 예배는 굉장히 연관이 깊다. 제자훈련은 단순히 어떤 훈련으로 그냥 성경공부 끝나는 것이 아닌, 최상의 예배자가 되게 한다. 이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고 변화시키신 목적이 바로 예배이다.


 그래서 예배가 죽으면 교회가 죽는 것이다. 다른 것이 잘되어도 공적 교회 예배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교회는 침체된다. 예배는 교회의 중심부에 있다. 그런 점에서 목회자 스스로가 얼마나 깊은 예배의 경험이 있는가 자문해보아야 한다. 아무리 영향력있는 목회자여도 예배의 모든 것을 전부 경험 하지는 못한다. 그만큼 예배의 깊이는 끝이 없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늘 예배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 목마름은 누가 있는가? 경험한 사람이 목마른 것이다. 목이 마르지 않으면 경험을 못 해본 것이다.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에게 목마름이 있었다.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결국 그의 목마름은 예배에 대한 목마름이었음을 보게 된다. 인생의 목마름은 예배를 통해 해결된다. 그래서 교회의 존재 목적은 예배가 되는 것이다.





#목회자

 “목회자가 예배의 한 가운데 서 있는가?”
 목회자가 사회나 인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는 바로 내가 예배자인가하는 부분이다. 목회자가 예배 속에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깊이 들어가는가? 하나님의 영에 압도당하는 영적인 충만함을 경험하고 있는가? 목회자가 하나님 앞에 철저히 무릎 꿇는 참된 예배가 있는가? 예배만 잘 드리면 끝이 아니다. 제자훈련이나 소그룹 안에서도 예배가 있어야 한다. 아무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은 백성들만이 예배를 드릴 수 있다. 목회자는 자신이 경험한 영역까지만 성도들을 인도할 수 있다. 그래서 목회자의 영적상태가 굉장히 중요하다. 결국 교회 예배의 해답은 담임 목회자다. 그 누가 무엇을 해도 그 이상 넘을 수가 없다. 교회는 목회자가 경험한 곳까지만 갈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가 너무 복잡해졌다. 너무 많은 것을 강조하다보니 정말 강조할 게 희미해졌다. 교인들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목회자들도 갈피를 못잡는 경우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 교회가 정말 붙들어야 하는 것. 사도 바울은 바로 본질을 말하고 있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도 목회자가 늘 깨어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많이 느낀다. 목회자가 깨어있지 않으면 교회는 어느 곳을 향하는지, 어디로 가고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리더의 책임은 무겁게 다가온다. 영적 리더십의 실종은 교회의 난파로 이어진다. 지도자의 영적 무딤은 교회를 침몰하게 한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되신, 그를 통해 형성된 공동체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을 통해 계속해서 이를 강조한다. 교회는 세상과 전혀 다른 공동체라는 사실이 강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에베소서 1장을 기준으로 현재의 교회를 비교해봐야 한다. 본질적 교회와 가까운지, 아니면 세상과 가까운지 점검해야 한다. 너무 세상과 닮아있는 교회의 모습이 보인다면, 그곳에 다시 생명력을 부여하는 일을 목회자가 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본질적인 것으로 회복해야 한다. 말씀의 회복, 복음의 능력의 회복, 성령의 역사의 회복이 있어야 한다.

시대는 바뀌지만 교회의 속성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일하심으로 바뀌지 않는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교회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교회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목회자는 다르게 말해야 한다. 패배주의를 내려놓고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이 붙드시기에 희망이 있다. 태초부터 계획하시고, 피값으로 속량하셨으며, 성령이 일하고 계시는 교회이다. 이를 통해 은혜충만한 교회의 역사를 기대한다.